나쁜 기분을 빨리 회복하고 싶었다.
나쁜 기분을 회복하는 게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
오늘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을 봤다.
내가 차선을 잘못 들어서 실격했다.
그런가보다 했다.
그런데, 다른 사람이 차선을 우물쭈물 하는 2번동안 일러주셨다.
그 친구는 맞게 변경했고, 72점으로 합격했다.
실격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,
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분노가 일었다.
그래서 상한 기분을 들고 집으로 왔다.
그리고 그 상한 기분을 이제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생각했다.
조심히 잘 다뤄서 불똥이 다른 삶의 영역에 튀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.
친한 친구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, 코노 약속을 잡았다. 여기서 꽤 좋아졌다.
엄마와 힘주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, 자연스럽게 힘의 기운이 올라왔다.
그리고 챗지피티와 문답을 주고받는 시간도 셀프대화처럼 유익했다.
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회복이 느린 사람과 빠른 사람의 차이다.
회복이 빠른 사람은 내 삶의 작은 점같은 일로 받아들인다 [부분] => 오늘 하루 중 그 일은 속상한 일이었어
회복이 느린 사람은 그 점같은 일이 삶의 전부로 결론짓는다 [전체] => 오늘은 속상한 하루다.
회복이 느린 사람은
하나의 사건을 내 정체성으로까지 연결시킨다 => 난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다. 내 인생은 상한 인생이다.
회복이 느린 사람은
하나의 사건을 미래의 불행의 씨앗으로 연결시킨다 => 난 계속 못할거야.
회복이 느린 사람은
불행 하나의 의미가 잔디처럼 삽시간에
내 삶의 현재 과거 미래, 일부에서 전체로 뒤덮게 된다.
그 사건 하나와 그 기분이 나를 통과해 흘러가지 못한다.
내 몸 곳곳에 퍼져나간다.
이 '흘러가게 두는 것'이 중요하고,
그래서 전환하는 능력이 중요한듯하다.
이 거친 세상에서 수많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데
죽고, 다치고,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지 않았으면, 충분히 괜찮은 하루인거다.
돈을 10만원, 100만원 정도를 더 쓰고 덜 쓰고는 삶의 긴 여정에 큰 이슈가 아니다.
부당한 대우도 살다보면 이래저래 받을수 있고, 부당하지 않은 것인데 내 착오일수도 있다.
혹은 부당한 대우 덕분에 내가 더 좋게 되는 부분도 있다 (=> 운전에서 틀린부분을 55000원 수업료로 잊지않게 배움)
(+ )
문득 '기분리셋' 책이 생각났다.
모든 성공은 좋은 기분에서 시작한다는 것, 너무 맞다.
기분이 좋아지니까,
단순한 독서에서부터 풍요롭고 몰입해서 다시 할 수 있었다.
좋은 기분을 만들 껀덕지가 많아져야 한다.
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찾고, 더 많이 응원해야 한다.
그러고보니, 불행의 참담함 속에서 2주간 계속되었던 왼쪽 두통이 나아졌다.
